투병일지

의사 선생님

조은피 2016. 10. 7. 05:22

          이런 저런 사유로 한 달 넘게 못 뵙다가 뵌 의사 선생님. 세션에서와는 달리 담담하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상태는 어떤지, 무엇이 좋아졌고 무엇이 여전히 힘든지 다소 건조하게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었다. 원래 이게 증상이 심할 때는 아예 말을 잘 못하게 되거나 해도 아주 천천히 더듬더듬 말하기 때문에 이번에 아마 놀랐을거다 ㅋㅋㅋㅋㅋㅋㅋ내가 말을 너무 유려하게 조목조목 잘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여태 영어 못하는 줄 알았지? ㅋㅋㅋㅋㅋㅋㅋ 

          의사 선생님은 평소보다 더 엄청난 속도로 내가 말하는 걸 타이핑하셨다. 그리고 지지부지했던 지난 일년여의 시간들이 정적으로 잠시 깔리고, 드디어 눈에 띄게 호전된 상태에 안도하고 웃으며 대화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무척 기뻐보였다. 잘 모르는 남의 일인데 어째서 함께 일희일비하는지 나는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가르치던 과외학생들이 성적이 개오르면 나까지 기쁘던 일이 떠올라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좋아지지 않는 부분들을 조절해줄 약을 추가로 처방받았고 앞으로 한 달동안 다시 경과를 지켜볼 것이다. 사실 예전에 높은 함량으로 처방 받았다가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음식 섭취도 못해서 몇 번 쓰러지는 바람에 결국 중단했던 약이라 좀 걱정은 되지만.. 이번엔 적은 함량이니 지금 먹는 약과 시너지를 내서 더 상태가 좋아지길 하는 바람이다. 

         예전에도 다 죽어가는 분위기를 좀 덜 슬프게 해보려고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들에 대해서 물어봐주시고 같이 얘기하고는 했지만 (연구 얘기, 맥주 종류, 알콜 함량 얘기라든가 물고기 기르기 얘기 같은 것들 ㅋㅋ) 이번엔 트럼프의 병크에 대한 얘기나 의사선생님이 좋아하는 캐나다 롹밴드 얘기 (의사선생님은 미국에 오래 산 캐나다 사람) 같은 것들을 진심으로 낄낄대면서 했다. 되게 이상한 이름의 롹밴드였는데 나는 그걸 또 벌써 까먹었다. 뭐였지? 밴드명이 몬가 되게 병맛이었는데?  그런데 선생님은 그 롹밴드를 미친놈처럼 좋아하시는지, 그 밴드가 여태 미국에서 공연을 못하고 있는 것이 자신이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아직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미국의 이상한 점이라고 했다. 음 그렇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