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샤리사

The Minimalists_Day10. Everything

조은피 2016. 11. 4. 05:17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라.

          10일째는 지금 현재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이 결국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임을 느껴보는 날이다. 우리는 정말 별 생각없이  "오 나 저거 필요했는데!!!!" "ㅎ 나 새 운동화가 필요하다 ㅎ" 라고 내뱉는다 (그리고 지른다 ^^).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은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닌 단지 '원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일용할 양식, 물, 주거공간, 옷, 만족스러운 삶, 몸과 마음의 건강, 괜찮은 인간관계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확실히 필요하다. 그 밖에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없어도 그만, 단지 원하는 것들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이미 우리가 지니고 있음을 염두에 두라고 이들은 말한다. 


          동의한다. 하지만 닝겐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그게 또 닝겐이라는 종의 삶 특유의 '재미'이자 '묘미'다. 그리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써 번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구입하고 즐기는 것에 대해 '나쁘다'거나 낭비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소비한 것들이 굳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소비란, 개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동안 고생한 자기 자신에게 주는 일종의 손쉬운 즉결 보상같은 것이 될 수 있고, 사회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어느 정도 번 놈들이 또 써줘야 경제가 발전하고 나라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닝겐은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들'만으로 살 수 없는 괴랄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어떤 물건내지 돈을 얻기 위해 오늘 그리고 내일의 삶까지 아낌없이 갖다 바쳐가며 내 살을 깎아먹고 삶을 허비할 생각은 결코 없다. 


http://www.theminimalists.com/21days/day10/


         그동안 집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 종류와 가짓수에 종종 감탄 내지 탄식했다. 그리고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심장으로 (ㅋㅋ) 물건들을 분류했고 처분, 정리했다.


1. 어떤 이유에선지 여전히 갖고 있었지만 사실은 명백한 쓰레기들을 갖다 버린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망가진 것, 헌 양말이나 옷, 유통기한 지난 양념 등. 남에게 줄 수도 없는 것들이니 단호하게 버린다.


2. 어떤 이유에선지 아깝다거나 결코 오지 않은 '언젠가'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니고 있던 것들을 갖다 버린다. 

대표적으로 종이백이나 상자 같은 것들. 언젠가 사용할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봤을 때 그 빈도가 현저히 낮은 것들을 모두 버린다. 오늘 버린 쇼핑백이 눈에 계속 밟히고 생각나거나 너무도 필요해서 눈물이 나는 순간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3. 이 시점에서는 사용 가능한 물건들이 남는다. 이 단계에서는 중복된 기능을 갖고 있는 것들 중 가장 좋은 것 내지 정말 잘 사용하는 것 하나만 남기고 전부 갖다 버린다. 

손톱깎기 두 개? 필요없다. 멀쩡한 물건을 갖다 버린다는 게 맘에 들지 않으면 그것이 필요한 지인들에게 주거나 기부하거나 팔면 된다. 물론 종종 낯선 사람들도 만나야하고 꽤 시간도 들고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필요로 하는 이에게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기분도 좋고 가끔은 용돈도 생기고 무엇보다 빈 공간과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일이다. 


4. 중복되는 물건 중에는 어떤 이유에선지 "모으고 있는 소모품"이 많다. 예를 들어 나에게는 방대한 홍차, 허브티 등 티 컬렉션이 있는데 사실 마시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버리는 게 아깝다면 사용하면 된다. 엄마가 보내준 홍삼차 같은 것들 있는 줄도 모르고 짱박아 놨던 것들을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유리병에 우려내 매일 식수처럼 마시니 진짜 좋다. 화장품과 옷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 내 입은 하난데 립스틱은 수십개고 정작 실제로 사용하는 건 몇 개 없다. 그냥 버리기 아깝다면 사용하면 되고, 사용하기 싫다면 버리거나 은세척에 사용하면 된다. 생활의 지혜 같은 게 생김 ㅋㅋㅋ 


5. 짱박아놔서 있는 줄도 모르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눈에 띄는 곳에 꺼내 놓아 본다. 그래도 여전히 사용하지 않는다면 버린다.


6. 위 과정들을 통해 이미 많은 물건들이 정리될 것이다. 공간을 깨끗이 정돈하고 남아있는 (살아남은) 물건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면 어느 정도 '정리'는 끝나게 된다. 


7. 만족했다면 여기서 멈춰도 되지만 뭔가 좀 더 채찍질하고 싶다면 살아남은 물건들을 노려보면서 그것이 진짜로 필요한 것인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지, 여전히 나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지 잘 생각해본다. 

나는 혼자 살지만 컵, 밥공기나 접시가 딱 한 개 씩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그 때 그 때 설거지하기 귀찮고 걍 새 컵 꺼내 쓰면 되니 편리하니깐 ^^ 이렇게 설거지는 쌓여가고 .. 이런 종류의 얄팍한 편리함?을 포기하고 사용할 때 마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만 딱 남기는 것이 현재의 목표. 많이 가벼워졌지만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기분. 


          이런 과정을 거쳐보면 새로 뭔가를 살 때 엄청나게 심사숙고하게 되고 정말 필요한 것만 사게 된다. 그저 순간의 충동으로 장바구니에 넣고 바로 빛의 속도로 결제하던 소비습관이 사라진 것이다. 1+1 또는 대박 세일 이런 것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초딩 때 이후로 평생 쓴 적 없던 가계부를 쓰면서 소비패턴도 잘 파악하게 되었다. 별 생각없이 세일하면 지르던 옷이나 신발들도 내가 정말로 원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사지 않게 됐다. 미국 최대의 소비 주간인 블랙 프라이데이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나는 어찌 될 것인지 ㅋㅋ 걱정이지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