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일지

오랜만에

조은피 2017. 2. 11. 05:55

   한 달만에 follow-up으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이 분을 뵌지도 거의 2년이 다 된 것 같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몇 번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가장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생활도 죽을 힘을 다하고 이를 악물고 몇 번이나 울어야 비로소 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살면서 내 인생 가장 밑바닥을 본 것이 아닐까.

   지난 한 달은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눈에 띄게 희망차고 좋은 달이었다. 카운셀러 선생님께 칭찬 받을 일이 여럿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업돼가지고 까불면 넘어진다고 하셨다. 그건 나도 무척 잘 아는 바였다. 그렇게 넘어져 버리면 더욱더 아플 것이고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저 절망적인 수준의 자존감으로 아무 희망도 기대도 없이 살아온 나에게 겉으로나마 야 너 이녀석 참 잘했다, 대견하다 중얼거리며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 어떠세요, 하고 되물으면 약간은 sarcastic 한 느낌으로 '낫 베드!' 라고 대답하시는 이 분. 오늘 의사 선생님은 수치가 10 이상 떨어졌다면서 기뻐하셨다. 나도 기뻤다. 약 먹는 것을 유지하면서 무려 3개월 뒤에 보자고 하셨다. 3개월. 3개월이라니. 

   그저께 우리 영역 교수님들이랑 대학원생들 앞에서 한 발표도 성황리에(?) 마쳤고, 새 친구도 사귀었고, 운동도 매일 매일 잘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학회에 낸 초록도 승인 받았다. 올해도 볕 좋은 플로리다 해변가에서 발표를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올해는 내 인생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을 한 해가 되지 않을까. 토나올 정도로 더러운, 밑도 끝도 없는 진흙탕에서 비로소 발을 빼낸 한 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