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 꽃 진 자리

어린 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하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 

 

- 연두, 정희성

 

****

   자고 일어나 보니 선생님께서 이 시를 직접 옮겨 적으신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셨다. 너무 좋아서 써보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글씨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맞아 이런 흐늘 흐늘한 진달래 같은 필체를 갖고 계셨다.

   나는 대학 시절 학부 필수 과목, 전공 과목들과 함께 한 학기에 늘 적어도 한 과목 정도는 완전히 쌩뚱맞은 수업을 듣고는 했다. 주로 음악 감상, 독서 토론, 서양 미술사, 현대 미술의 이해, 프랑스 문학과 예술 등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지만 늘 나에게 미지와 동경의 세계였던 예술과 관련된 것들로 기억한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수강했던 것이 바로 '생활 원예' 수업이었는데, 삼성 에버랜드가 자연 농원이던 시절 이병철 회장의 부름을 받아 그곳을 튤립으로 물들이는 작업을 담당했던 노교수님의 수업이었다. 갑자기 기말고사를 아침 8시 공대 건물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야행성에다가 공대 건물에 갈 일이 많지 않았던 당시의 내게 무척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한 아침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나를 포함한 생활 원예 수강생들은 노교수님과 함께 양재 화훼 시장으로 답사를 나가기도 했고 우리 대학교 내 여기 저기에서 자라고 있었지만 독수리상의 독수리가 하늘을 날고 한글탑이 돌 때까지 술만 마시느라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던 (존재 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식물들을 사진으로 찍어 그 아이들의 '이름'을 알아내 레포트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줄도 몰랐던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흐늘흐늘 연약하게 피면서 주로 옅은 분홍빛을 띄고 먹을 수 있는 반면, 철쭉은 잎과 꽃이 무성하게 뾰족 뾰족나고 상대적으로 짙은 색을 띄고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개화 시기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역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 놈이 그 놈 같이 생겼기 때문에 수업에서 배운 구분법으로 교내의 진달래만을 정교하게 수집하여 반 건물 뒷 마당에서 선배들과 화전 부쳐먹은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내게 화전이라는 것은 소설에서나 본 미지의 요리였기 때문에 몹시 궁금했던 나는 반 사람들을 모아 '학교에 진달래도 피었으니 화전이라는 걸 다같이 만들어 먹어봅시다! 와이낫?' 하고 강력히 추진했었다. 정작 그렇게 만든 화전의 맛은 별 감흥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사실 마찬가지지만 대학 시절 나는 정말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시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그렇다면 어떻게 철쭉과 영산홍을 구별하는 가였다. 찾아보니 꽃의 크기와 수술의 개수, 잎이 지는지 등의 차이가 있는 모양이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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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5. 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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