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하나를 얻은 것 같은 흐뭇함에 젖어들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젊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학도 있지만요.

   나에게 음악이 가진 최대의 훌륭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차이도 알고 중간 정도 차이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미묘한 작은 차이도 식별할 수 있죠. 물론 그것은 나한테 좋은 것, 나한테 나쁜 것이라는 뜻이니 그저 개인적인 기준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차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인생의 질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 크게 달라지게 만드니까요.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좋은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 중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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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하루키는 소설보다는 수필이 좋은 작가이다. 그의 경험과 생각이 여과없이 녹아 있고 짧고 쉽게 쓰여져 있어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다. 올해엔 내가 가지고 있는 종이책들을 미련이 남지 않도록 다 읽고 방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그의 잡문집을 다시 읽고 있다. 아무 페이지나 잡히는 대로 한 꼭지씩 읽어도 재밌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오늘은 이 사람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음악에 관련된 글을 읽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음악입니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또한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하는 편인데,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벽 4시에 기상해서 6시간 글을 쓰고 (혹자에 의하면 400자 원고지 10장 분량까지 반드시 쓰고 멈춘다고 한다) 밖에 나가 달리고 수영을 하고 샐러드를 즐기고 독서, 음악감상을 하고 9시엔 취침하는 일과를 가지고 있다. 올빼미에 잠도 잘 안 자고 꽤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낸 나에게 이런 스토익하고 규칙적인 삶이란 차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나도 그와 비슷한 하루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하고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고 논문을 쓰고 자기 전에 짧은 동영상을 한 편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게 지루해보일지 모르지만 이 과정에서 꽤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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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5. 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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