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부자는 언제나 이상할 정도로 말없이도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그보다 훨씬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 판단을 유보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때문에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자주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적잖이 시달려야 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에게 그런 특성이 나타나면 재빨리 알아차리고 달라붙게 마련이다. 내가 알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난폭한 녀석들의 은밀한 슬픔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학에 다닐 때 억울하게도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대부분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들이 은밀한 고백을 털어놓을 기미가 확실하다 싶으면, 나는 종종 잠을 자는 척하거나 뭔가에 몰두해 있는 척하거나 아니면 악의를 품은 듯이 일부러 경망스럽게 굴었다. 젊은이들의 은밀한 고백, 아니면 적어도 그런 고백을 하면서 사용하는 표현이란 흔히 남의 말을 표절한 경우가 많고, 그것을 억지로 숨기려고 하다보니 대개 흠이 나 있게 마련이다. 판단을 유보하면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 우리 아버지가 점잔을 빼며 말씀하셨고 지금 내가 점잔 빼며 다시 이야기하듯이 기본적인 예절 감각이란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다르게 분배되는 것이며, 그 사실을 깜박 잊어버릴 때면 뭔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내가 관대한 것처럼 자랑했지만 나는 이런 관대함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이란 단단한 바위 덩어리나 축축한 습지에 근거를 둘 수도 있지만, 나는 일정한 단계가 지난 뒤에는 그 행위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세계가 제복을 차려입고 있기를, 말하자면 영원히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기를 바랐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특권을 지닌 시선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오만하게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해 준 개츠비만이 내가 이러한 식으로 반응하지 않은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 내가 드러내 놓고 경멸해 마지않는 것을 모두 대변하는 개츠비 말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일련의 성공적인 몸짓이라면 그에게는 뭔가 멋진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치 1만 5000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하는 복잡한 지진계와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삶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 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그럼 진부한 감수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한테서도 일찍이 발견한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그래,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속절없는 슬픔과 숨 가쁜 환희에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삼은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 

 

- 위대한 개츠비 중, 스콧 피츠제럴드

 

    *주말 동안 기다려온 해피해킹 타입에스가 방금 도착했고, 나는 계획했던 대로 위대한 개츠비의 첫 부분을 이 키보드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 평생을 함께 할 동지를 얻은 느낌이라 무척 설렌다. 백무각이라 너무도 말끔하여 나의 손 끝 기억력을 자극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단 맥과의 호환성이 좋다는 것에 이견은 없고 오래 사용하기에 기분 좋은 입력 장치를 만난 것 같아 좋다.  

   위대한 개츠비 작품에 대한 할 말이 사실 많지만 일단 키보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다. 아주 어렸을 때, 컴퓨터 신동인 오빠가 부러워 엄마를 졸라 컴퓨터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엔 무려 도스 운영 체제였고 너무도 당연한 듯 씨알티 모니터와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했다. 나는 한글과 영문 자판을 외워 타자 연습을 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날마다 유독 탐내는 컴퓨터 자리가 있었다. 당시엔 획기적이었던 윈도우 운영체제를 가진 최신 컴퓨터가 아니었는데도 도각 도각하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퍽 마음에 드는 자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이 키보드를 사용해보니 나도 모르게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시절 컴퓨터 학원이 끝나면 나를 집 앞까지 졸졸 따라오며 줄기차게 괴롭혔던 쪼그만 남매의 얼굴도 떠오른다. 당시 나는 성숙한 초딩이(라고 믿고있)었고 그들은 고작해야 유딩 정도 되는 아기들이었는데 아직도 왜 아는 사이 조차 아니었던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는지 알 수 없다. 정말 소심한 울보였던 나는 그들에게 '쫓아오지 마' 이상의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고 결국 그 매일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가던 길을 멈추고 애원하듯 외쳤다! 당시 내가 뭐라고 외쳤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순간 그 남매가 무척 놀란 듯한, 미안한 듯한 뭔가 복잡한 슬픈 표정을 지었었고, 나를 따라오던 것을 멈추고 발길을 돌렸다는 것과 그 뒤로는 학원에도 나오지 않고 나를 뒤쫓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잊고 있던 이야기를 떠올렸고 주절거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이 훌륭한 새 키보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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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5. 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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