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돌의 문을 두드린다.
-나야, 들여보내줘.
네 속으로 들어가서
주위를 빙 둘러보고,
숨처럼 너를 깊게 들이마시고 싶어.
돌이 말한다.
-저리 가, 난 아주 견고하게 닫혀 있어.
내 비록 산산조각 나더라도
변함없이 굳게 문을 잠글 거야.
부서져 모래가 되고, 가루가 된다 한들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을 거야.
나, 돌의 문을 두드린다.
-나야, 좀 들여보내줘.
난 그저 순수한 호기심으로 널 찾아왔어.
호기심에게 인생이란 절호의 기회잖아.
난 너의 궁전을 거닐고 싶어.
그런 뒤에 나뭇잎과 물방울을 차례로 방문할 거야.
모든 걸 다 체험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해.
언젠가는 죽을 테니까.
넌 분명 이해해줄 거라 믿어.
돌이 대답했다.
-나는 돌로 만들어졌어.
그러니까 철저하게 엄숙함을 지켜야 해.
어서 썩 물러나.
내게는 웃음의 근육이란 없어.
나, 돌의 문을 두드린다.
-나야, 들여보내줘.
네 속에 커다란 빈방이 있다는 얘길 들었어.
이제껏 아무도 본 적 없는, 허허롭고 아름다운,
그 누구의 발자취도 없는, 무감각한 방.
사실은 너도 그 방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지?
이제 그만 인정하지 그래?
돌이 응수한다.
-커다란 방이라구?
그러나 그 안엔 빈자리가 없어.
어쩜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네 보잘것없는 미감을 초월한 곳이야.
나에 대해 어깨너머로 대강은 알 수 있겠지만
내 전부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는 없을 거야.
겉으론 너를 향하는 듯해도
나의 내면은 네게서 온전히 돌아서 있는 걸.
나, 돌의 문을 두드린다.
-나야, 들여보내줘.
네게서 영원한 안식처를 찾는 건 아니야.
나는 불행한 사람도 아니고,
집 없는 떠돌이도 아니야.
내가 사는 세상은 충분히 돌아갈 만한 가치가 있어.
빈손으로 들어갔다 빈손으로 나올게.
내가 진짜 갔다 왔다는 유일한 증거는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할
몇 마디의 말뿐일 텐데.
돌이 대꾸한다.
-들어오지 마.
네게는 동참의 의지가 전혀 없잖아.
그 어떤 감상도 네 진심을 대신할 순 없는 법.
폭넓은 식견을 자랑하는 예리한 관찰력도
함께하고픈 마음이 부족하면 아무런 쓸모도 없잖아.
들어오지 마, 넌 그저 의지를 가져야겠다는 결심만 있을 뿐.
의지의 싹과 상상력만 가졌을 뿐.
나, 돌의 문을 두드린다.
-나야, 제발 들여보내줘.
네 지붕 밑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천 세기씩이나 기다릴 순 없잖아.
돌이 응답한다.
-만일 나를 믿지 못한다면
나뭇잎에게 물어보렴. 나와 똑같이 말할 테니까.
물방울에게 물어보렴. 나뭇잎과 똑같이 말할 테니까.
마지막으로 네 머리에서 솟아난 머리카락에게 물어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박장대소.
비록 나는 웃는 법을 제대로 모르지만.
나, 돌의 문을 두드린다.
-나야, 들여보내줘.
돌이 말한다. - 내겐 문이 없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돌과의 대화.
+++++++
오늘 느낀 감정 그대로.
똑똑똑
나야. 들여보내줘.
그럴 수 없어.
넌 내가 아니니까
여기 들어올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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