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이 어제부로 그놈의 몹쓸 공부를 굳이 더 열정적으로 하기 위해 씨애틀로 떠났다. 같은 연구자로서 그런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바이다. 그는 2주 간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그 다음 바로 1주 간 가족여행으로 아이슬란드로 떠날 것이다. 올 여름도 역시 병마와 싸워야 했던 나는 폴과 가족여행을 함께 가는 것 대신 새학기 시작 전에 밀린 일을 마치기로 하고 남았다. 단지 오랜만에 홀로 남겨진 것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 매일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일을 실컷 한 뒤 집에 돌아와 그동안 미뤄왔던 집정리를 하나씩 좀 더 섬세하게 할 예정이다. 오늘이 바로 DAY1인데 의사 선생님과 약속이 있고 지도교수님과 미팅도 있어서 달리 먼 곳?으로 떠나지는 않고 우리 과 건물 바로 옆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다. 

 

옛다 도서관 경관샷. 경관이 좋다 못해 학교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라 그닥 조용하진 않습니다. 흔들 의자에 흔들 흔들 앉아서 경관 한 번 나같은 놈 한 번 보고 돌아가는 듯. 낄낄대지만 않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 과 건물 바로 옆 도서관인데도 주로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참으로 생경하게 느껴진다.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온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하루 하루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루어질리가 만무한 내 로망 중 하나는 거주지 없이 훌쩍 훌쩍 비행기를 타고 떠나 세계 여기 저기서 철새처럼 생활하는 것인데, 사실 이정도랑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물론 그 쪽이 훨씬 피곤하겠지만. 그래서 이 쪽이 더 에너지, 돈, 시간, 실현 가능성 등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일은 또 다른 곳에서 일해볼 것이다. 

 

     보드 게임과 방탈출 류의 머리쓰는 게임을 좋아하는 폴이 혼자 꽤 오래 남겨질 나를 위해 수수께끼.. 암호 같은 쪽지를 남겨두고 떠났다. 쪽지의 글과 의도에서 느껴지는 그다운 재치에 미소가 나왔지만 존나 모르겠는데? 이걸 어떻게 풀라고?? 3주 안에 풀 수 있는 암호인지 잘 모르겠다. 폴이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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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두랄루민 at 2019. 7. 30.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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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해봐요" 라고 말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하고 저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비르히니아가 '네가 약속한 거 기억하지?' 라고 물었을 때 그녀에게 한 번 더 '다음 주에 우리 같이 점심 먹을 거잖아, 오늘은 내 부모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셔' 라는 말을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뇌에서부터 빠져나오기 위하여 아무 말이나 토해내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연상 작용 때문인지 모르지만 지난 겨울 프랑스 요리사가 성 이시드로에 있는지 아니면 성 페르난도에 있는지 아리송한데, 한 오래된 별장에 개업한 삐에르라는 식당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정말 삐에르가 그 남쪽 지역에 있던가? 여하튼 이런 식으로 순간 말을 더듬어대다가 확실한 이름과 주소는 얼버무려버립니다. 이런 신통치 못한 저의 기억들로 인해 제가 중요한 인물로 보이기 위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식당을 칭찬하는 거라고 그녀가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그런 분별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그 식당에서 제공하는 만찬들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런 묘사는 저같이 단순한 미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는 비겁해서였는지 아니면 의욕을 상실해서였는지 제가 그녀와 점심을 같이하지 못하겠다는 핑계는 결국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잘난 척하느라고 그녀와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걸로 그녀가 이해하게끔 해버립니다. 저는 괴롭습니다. 제 의지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

     저는 비르히니아에게 해방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같이 점심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저의 어머니는 벌써 로세달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기분이 좋아서,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으시고 오래전 바로 그 정원에서 찍었던, 지금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색 바랜 사진에 있는 모습 그대로 벤치에 앉아 계신 모습을 상상합니다. 

     저는 시골집 복도를 지나 회칠이 벗겨진 오래된 책상으로 갑니다. 소파에 몸을 이상하게 웅크리고 주무시고 계시던 아버지를 어렵사리 깨웁니다. "어젯밤에 잠을 못 잤어" 라고 변명이라도 하시듯 말씀하시죠. 저를 보시자 무척 기분좋아 하시지요. 저는 즉시 말씀을 드립니다. "부모님과 점심을 같이 못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신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해하시는 데 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급히 서둘러 부탁드리죠. "어머니한테 말씀드리세요." 아버지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시기 전에 저는 떠나려고 합니다. 아직은 아버지가 기분좋게 계시지만 아버지도 곧 슬퍼하실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러한 고통을 부모님께 안겨드린답니다. 그리고 단지 점심 식사 때문에 저랑 사귀고 있는 (이렇게 말하다니 참 나는 야비하지요?) 한 여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제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답니다. 

     그는 이러한 일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렸다. 

     "그러니까 지금은 부모님을 보고 싶지 않다는 거군요."

     "저희들은 너무나 잘 지냈는데" 라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게는 설명할 힘이 없었다. 

 

- 패배한 사랑,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 

 

***

     누군가에게 읽어보지 않은 책을 선물 받는 일은 굉장히 스릴 넘치는 일이다. 특히 작가도 소재도 장르도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더욱. 과거에 나는 내가 읽고 싶은, 혹은 드물지만 소장하고 싶은 책을 부탁해서 생일 선물로 받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았다. 이 환상문학의 대가라는 비오이의 '러시아 인형' 단편집을 선물 받은 것은 어언 2015년의 일로,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덜희'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부끄러워할지도 모르니까 가명을 사용한다) 라는 친구의 깜짝 선물이었다. 모름지기 선물이라는 것은 1) 선물한 사람의 취향, 2) 선물한 사람이 생각한 선물 받는 사람의 취향, 3) 그 둘 사이의 어딘가, 4) 완전 랜덤 - 따위를 반영하게 된다. 이 책은 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내 소중한 친구 덜희의 개인적 취향 -언젠가 그녀가 즐겁게 이 책을 읽었을 것이라는 것-과 그녀가 생각했을 때 나 역시 이 책을 제법 즐겁게 읽을 것이라는 바람 혹은 작은 확신 같은 것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미국집으로 오는 길에 소중히 들고 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일에 관련되지 않은, 더구나 잘 모르는 작가의 '문학' 작품을 시간을 내서 읽을 마음의 여유가 오랫동안 없었다. 최근에서야 나는 아침 저녁마다 잠깐씩 짬을 내서 일과 관련되지 않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꽤 즐거운 하루 일과가 되어버렸고 이제야 덜희의 선물을 진지하게 마주 볼 자신이 생긴 것이다.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속지에 적혀 있는 덜희의 귀여운 글씨가 '이제사 읽어볼 마음이 들었냐'고 어이없어 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참 반가웠다 (Figure 1). 

 

Figure1. 보통 '간판' 작품에서 벗어난 세계 문학 도서는 애초에 재고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새 것을 찾아도 어쩐지 낡아보이게 마련이라 새 책이 확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2015년의 나는 베리쥬스를 종종 갈아마셨나보다. 어쩌면 화장실을 잘 못 갔거나.

     '러시아 인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의 단편집. 마지막으로 소설이라는 것을 읽은 것은 참으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인지라 (나의 지인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거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약간 겁 비슷한 것까지 났다. 나에게 소설이라는 것은 당췌 어디로 데려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타임머신 혹은 환상 특급 열차의 트리거 같은 존재인데 "얘들고 화장실 가렴 케케케" 라니. 덜희 이 녀석은 도대체! 나는 한 번 더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에 장만한 캠핑용 의자를 방에 펼쳐서 진득이 앉았다 (캠핑사이트가 아니라 그냥 내 방이다). 그리고 몇 년의 머뭇거림이 무색하게 한참을 이 책을 붙들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호흡이 짧은 단편들이 담겨 있는데도 그 짧은 글에 숨막히는 긴장감과 가끔은 충공깽스러운 반전 요소들이 들어있어 더욱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ㅇㅅㅇ..!! 퐈..퐌타스틱. 덜희,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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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7. 26.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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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이란 행동이 아닌 습관인 것이다. " - 아리스토텔레스

- 탁월함이란.

 

"광기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며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행동이다. " - 아인슈타인

- 나는 미치지 않았는지.

 

"세상 누구에게도 당신의 문제를 절대 말하지 마라. 20%는 당신의 말에 신경쓰지도 않고 나머지 80%는 당신이 문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반긴다. " - 루 홀츠 

- 나의 아픔에 변태처럼 즐거워하지 말고 거울을 보기 바란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미래도 꿈꾸지 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라. " - 부처 

- 희망도 기대도 갖지 마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나의 가장 중요한 일들을 좌우해서는 안된다. " - 괴테

- 넷플릭스 그만 봐라.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 - 니체 

- 이 말은 좀 정도껏 들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진짜 죽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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