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 177

  1. 2019.08.24 아담과 이브
  2. 2019.08.16 마음새끼
  3. 2019.07.30 폴이 남긴 암호 풀이 - 3 & 4
  4. 2019.07.30 헤밍웨이
  5. 2019.07.30 폴이 남긴 암호 풀이 - 1 & 2
  6. 2019.07.30 폴이 없다 !
  7. 2019.07.26 환상 속의 덜희
  8. 2019.07.17 괜히 좋아하는 말말
  9. 2019.05.16 중국 이빨이 도착했다
  10. 2019.05.15 나의 사랑스런 연인

     그들은 자신들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타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이는 아담이 이브를 보호하려 하기보다는 그녀를 꾸짖음으로써 자신을 지키려고 한 사실에 의해서도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간이 사랑에 의해서 다시 결합되지 못한 채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수치심의 원인인 동시에 죄책감과 불안의 근원이다. 

     따라서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자신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고독이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려는 욕구이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한다면 곧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 하면 완전한 고립에 대한 공포감은 분리감이 사라져 버리도록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물러남으로써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분리되어 있는 그 외부 세계마저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모든 인간은 한 가지의 동일한 문제의 해결에 직면해 왔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분리감을 극복하고 일치를 이루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

 

     그 문제는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 즉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는 동일한 근거에서 나오기 때문에 동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답은 다양하다. 그 문제는 동물 숭배에 의해, 인간의 희생이나 군사적 정복에 의해, 사치에의 탐닉에 의해, 금욕적인 포기에 의해, 강제 노동에 의해, 예술적 창조에 의해, 신에 대한 사랑에 의해,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에 의해 해답을 낼 수 있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어구어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발 혼자 좀 내버려두세여  (0) 2019.09.03
눈부시구먼  (0) 2019.08.29
마음새끼  (0) 2019.08.16
환상 속의 덜희  (0) 2019.07.26
괜히 좋아하는 말말  (0) 2019.07.17
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8. 24. 01:38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마음은 제가 이대로 계속 가는 걸 원치 않아요."

   

      "바로 그걸세.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세. 그대가 마침내 얻어낸 모든 것들을 한낱 꿈과 맞바꾸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제가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기 때문이네. 아무리 그대가 듣지 않는 척해도, 마음은 그대의 가슴속에 자리할 것이고 운명과 세상에 대해 쉴새없이 되풀이해서 들려줄 것이네." 

   

     "제 마음이 이토록 저를 거역하는데도요?"

 

     "거역이란 그대가 예기치 못한 충격이겠지. 만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도 그대를 그렇게 놀라게 하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의 꿈과 소원을 잘 알고, 그것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도 알 것이기 때문이네.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 

 

*****

스테디셀러는 괜히 읽어보기 싫은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여지껏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가 바람같이 슝 놀러온 오빠네 책장에 우연히 있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꺼내 읽은 연금술사. 박근혜 씨 때문인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돕는다는 둥 하는 말이 괜히 불편했다. 돕긴 뭘 도와 다들 혐생 시궁창이라고 난린데 ㅠㅠ 아마도 내가 종교에 뿌리 깊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모든 것은 신 혹은 신에 준하는 존재의 숨결에 의해 만들어졌고 모든 것은 사실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느껴보고 따랐을 때 비로소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 등등 책의 큰 뼈대를 이루는 기본개념들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걸 안 믿어! 못 믿어! 이런 걸 떠나서 그저 잘 '모르겠는' 느낌에 가깝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양치기라든가 연금술사라든가 하는 주요 인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무스하게 구렁이 담넘어가듯 '알았다! 나 깨달음ㅋ' '나는 만물을 관통하는 하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 '바람이될거얌ㅋ 나 바람시켜죠^^' 이러니까 나로서는 약간 머리주변에 물음표가 올라오고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인간, 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줬다는 점에서 좋았다. 

 

'어구어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부시구먼  (0) 2019.08.29
아담과 이브  (0) 2019.08.24
환상 속의 덜희  (0) 2019.07.26
괜히 좋아하는 말말  (0) 2019.07.17
나만의 방  (0) 2019.05.07
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8. 16. 00:24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세종대왕님이 울고 가실 세번째 괴쪽지. 몬소리여 이게 대체 

 

나는 이 쪽지를 발견하고 곧 정공법을 포기했다.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폴은 과학자말고 암호요원 같은 걸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 쪽지에서 풀어야할 것은 지금까지의 문제들로 미루어보았을 때 숫자 혹은 글자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0 부터 9, a 부터 알파벳 순으로 하나씩 끼워 넣어본 결과, 답은 i 

 

bit.ly/paulscottii 

 

조부님의 이름을 걸고 답은 이거다. 왠지는 쉿.

그리고 나온 "RYUNGLEMON". 내가 어렸을 적부터 갖고 있는 타로카드 상자에 써있는 글씨이다. 불길한? 마음으로 상자를 열자 네번째 괴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네번째 괴쪽지. 뒷면보고 나도 모르게 빵터져버렸누 이색2 남몰래 아티스트였누 

폴은 새를 좋아하고 나는 개를 좋아한다. 폴은 그 중에서도 특히 펭귄을 좋아하고 나는 렛서판다를 좋아하는데 (응?) 아마 본인이 지니고 있는 미감이라는 걸 이 쪽지에서 폭발시켜버린 것 같다. 원본으로 의심되는 사진 몇 개를 들고 오려고 했지만 급현타가 와서 그만둔다. 윗쪽에 그려진, 왠지 모르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펭귄이 마카로니, 아래쪽의 브릿지 넣은 쌍팔년도 양아치스러운 펭귄이 롹호퍼 펭귄임을 조모님의 이름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아무리 정답을 쳐넣어봐도 링크가 열리지 않았다. 알고보니 출제자의 작은 (..) 실수가 있었다. 뭐 출제자도 닝겐이니까요 뭐하는 새끼야 이거ㅜㅠ엄마 몰라 무서워 ㅠㅠ 어쨌든 아나그램을 했다고 치면 답은 romance.

 

bit.ly/psromance  

 

여기로 들어가보면 "Book: Pandora's Lab (in bookcase, page 157)" 이라고 꽤 친절하게 다음 쪽지의 장소가 적혀있다. 예상대로 나는 곧 내 책장에서 판도라 랩이라는 낯선 책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게 157쪽을 펼쳐 보았는데..

 

-다음에 계속 

 

'두랄루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다듬기  (0) 2020.10.08
셀린디온과 우버  (0) 2019.10.19
헤밍웨이  (0) 2019.07.30
폴이 남긴 암호 풀이 - 1 & 2  (0) 2019.07.30
폴이 없다 !  (0) 2019.07.30
Posted in : 두랄루민 at 2019. 7. 30. 23:52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헤밍웨이 이름에 끌려 들어온 오늘의 까페. 

     어제의 쾌적했던 톰슨 라이브러리를 시작으로 오늘은 콜럼버스 도심에 있는 까페에 왔다. 차분히 내리는 비, 콜럼버스에 꽤 오래 살았지만 아직도 낯선 다운타운 빌딩 속에 숨어있는 작은 헤밍웨이. 퍽 기대가 되었다. 의외로 빌딩 뒤에 숨어 있었는데, 1920년대의 빠리 쌀롱을 추구하는 듯 했다 .. (감히 20년대 갬성을 이렇게..) 미국이니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도록 하자. 여기는 특히 좁은 테이블, 찾을 마음도 딱히 안 드는 아일렛, 불편한 의자, 좀 부담스럽게 친절하고 목소리 큰 점원 등의 문제로 죽치고 앉아서 일을 하기에는 내게 이상적인 곳이 아닌 듯 하다. 이렇게 낯선 까페에서 세상에 이런 걸 진짜 돈받고 파나? 싶게 못생긴 핸드메이드 쿠키를 팔면 어쩐지 꼭 사먹어보곤 하는데, 맛은..글쎄요.. 커피는 폴과 자주 가서 익숙한 럭키브로의 것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어쩐지 도시가 더 그리워지는 날, 가볍게 책 한 권 들고 와서 읽다가는 정도가 딱 좋을 것 같다. 

 

'두랄루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셀린디온과 우버  (0) 2019.10.19
폴이 남긴 암호 풀이 - 3 & 4  (0) 2019.07.30
폴이 남긴 암호 풀이 - 1 & 2  (0) 2019.07.30
폴이 없다 !  (0) 2019.07.30
중국 이빨이 도착했다  (0) 2019.05.16
Posted in : 두랄루민 at 2019. 7. 30. 23:24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그렇다. 폴은 떠나기 전에 내가 혼자 남아서 쓸쓸할까봐 수수께끼 암호들을 집안 곳곳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귀여운 짓을 감히 해놓고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몇 주 전 집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이상한 쪽지를 발견하면서 (정리, 청소를 자주 하는 편) 폴의 수수께끼 암호 쪽지 시리즈 중 하나를 먼저 발견해버린 것이다. 폴은 무척 당황하며 그 쪽지를 내놓으라고 버둥댔지만 나는 이미 폰사진으로 찍어서 증거 박제.. 폴에게 이게 뭐냐고 추궁하다가 자기가 없는 동안 혹시 심심할 나를 위해 마련한 게임이라는 걸 깨달은 뒤로는 더이상 묻지 않고 폴이 떠나는 날까지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내 캠핑의자 테이블에서 괴쪽지 하나를 발견하는데.. 

 첫번째 괴쪽지 갓뎀퍼킹 영어도 힘든데 시작부터 모스부호냐 나 외국인이라고

 

첫번째 쪽지의 열쇠는 모스 부호였다. 

쪽지 뒷면의 점과 막대기를 모스 부호로 풀이하면 

"paul loves you".

 

http://bit.ly/paullovesyou 로 들어가보면

두번째 힌트인 "Ice Skates" 가 나온다. 

나는 아이스 스케이팅을 좋아해서, 집에 내 피겨스케이트가 있는데, 그 스케이트 깊숙한 곳에서 두번째 쪽지가 나왔다. 

두번째 괴쪽지 이쯤이야 순식간에 풀지 

음? 이게 뭐람하고 곧바로 힌트가 있는 웹페이지로 들어갔다.

아 또 이런 식의 암호라 이거지? 

숫자# 으로 된 코드 세 개에서 6글자를 도출하는 것이니까 

코드 한 개에서 알파벳 두 개씩. 

"moomin"

그렇다 무밍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하마스러운 핀란드 캐릭터다. 

bit.ly/paulmoomin 으로 들어가보면 

이런 문장이 써있다.

 

"A cat holding a fish is sat next to two mice. They look out at a tank full of fish." 

 

폴네 어머니가 부활절 선물로 보내주신 미키, 미니마우스 인형 옆에 엄마와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하나 골라온 붕어를 들고 있는 고양이 자기가 있는데 그 속에 세 번째 쪽지가 들어있었다. (미키, 미니마우스와 고양이 자기 쪽에서 우리집 개큰 어항이 잘 보인다.)

 

세번째 쪽지는 다음 이 시간에... (아직 못 풀어서..) 

'두랄루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이 남긴 암호 풀이 - 3 & 4  (0) 2019.07.30
헤밍웨이  (0) 2019.07.30
폴이 없다 !  (0) 2019.07.30
중국 이빨이 도착했다  (0) 2019.05.16
해피해킹 타입에스 HHKB TYPE-S 백무각  (0) 2019.05.03
Posted in : 두랄루민 at 2019. 7. 30. 07:58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폴이 어제부로 그놈의 몹쓸 공부를 굳이 더 열정적으로 하기 위해 씨애틀로 떠났다. 같은 연구자로서 그런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바이다. 그는 2주 간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그 다음 바로 1주 간 가족여행으로 아이슬란드로 떠날 것이다. 올 여름도 역시 병마와 싸워야 했던 나는 폴과 가족여행을 함께 가는 것 대신 새학기 시작 전에 밀린 일을 마치기로 하고 남았다. 단지 오랜만에 홀로 남겨진 것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 매일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일을 실컷 한 뒤 집에 돌아와 그동안 미뤄왔던 집정리를 하나씩 좀 더 섬세하게 할 예정이다. 오늘이 바로 DAY1인데 의사 선생님과 약속이 있고 지도교수님과 미팅도 있어서 달리 먼 곳?으로 떠나지는 않고 우리 과 건물 바로 옆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다. 

 

옛다 도서관 경관샷. 경관이 좋다 못해 학교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라 그닥 조용하진 않습니다. 흔들 의자에 흔들 흔들 앉아서 경관 한 번 나같은 놈 한 번 보고 돌아가는 듯. 낄낄대지만 않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 과 건물 바로 옆 도서관인데도 주로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참으로 생경하게 느껴진다.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온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하루 하루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루어질리가 만무한 내 로망 중 하나는 거주지 없이 훌쩍 훌쩍 비행기를 타고 떠나 세계 여기 저기서 철새처럼 생활하는 것인데, 사실 이정도랑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물론 그 쪽이 훨씬 피곤하겠지만. 그래서 이 쪽이 더 에너지, 돈, 시간, 실현 가능성 등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일은 또 다른 곳에서 일해볼 것이다. 

 

     보드 게임과 방탈출 류의 머리쓰는 게임을 좋아하는 폴이 혼자 꽤 오래 남겨질 나를 위해 수수께끼.. 암호 같은 쪽지를 남겨두고 떠났다. 쪽지의 글과 의도에서 느껴지는 그다운 재치에 미소가 나왔지만 존나 모르겠는데? 이걸 어떻게 풀라고?? 3주 안에 풀 수 있는 암호인지 잘 모르겠다. 폴이색히...

'두랄루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밍웨이  (0) 2019.07.30
폴이 남긴 암호 풀이 - 1 & 2  (0) 2019.07.30
중국 이빨이 도착했다  (0) 2019.05.16
해피해킹 타입에스 HHKB TYPE-S 백무각  (0) 2019.05.03
음음 와인 두 잔  (0) 2019.04.20
Posted in : 두랄루민 at 2019. 7. 30. 01:38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이야기해봐요" 라고 말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하고 저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비르히니아가 '네가 약속한 거 기억하지?' 라고 물었을 때 그녀에게 한 번 더 '다음 주에 우리 같이 점심 먹을 거잖아, 오늘은 내 부모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셔' 라는 말을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뇌에서부터 빠져나오기 위하여 아무 말이나 토해내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연상 작용 때문인지 모르지만 지난 겨울 프랑스 요리사가 성 이시드로에 있는지 아니면 성 페르난도에 있는지 아리송한데, 한 오래된 별장에 개업한 삐에르라는 식당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정말 삐에르가 그 남쪽 지역에 있던가? 여하튼 이런 식으로 순간 말을 더듬어대다가 확실한 이름과 주소는 얼버무려버립니다. 이런 신통치 못한 저의 기억들로 인해 제가 중요한 인물로 보이기 위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식당을 칭찬하는 거라고 그녀가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그런 분별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그 식당에서 제공하는 만찬들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런 묘사는 저같이 단순한 미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는 비겁해서였는지 아니면 의욕을 상실해서였는지 제가 그녀와 점심을 같이하지 못하겠다는 핑계는 결국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잘난 척하느라고 그녀와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걸로 그녀가 이해하게끔 해버립니다. 저는 괴롭습니다. 제 의지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

     저는 비르히니아에게 해방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같이 점심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저의 어머니는 벌써 로세달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기분이 좋아서,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으시고 오래전 바로 그 정원에서 찍었던, 지금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색 바랜 사진에 있는 모습 그대로 벤치에 앉아 계신 모습을 상상합니다. 

     저는 시골집 복도를 지나 회칠이 벗겨진 오래된 책상으로 갑니다. 소파에 몸을 이상하게 웅크리고 주무시고 계시던 아버지를 어렵사리 깨웁니다. "어젯밤에 잠을 못 잤어" 라고 변명이라도 하시듯 말씀하시죠. 저를 보시자 무척 기분좋아 하시지요. 저는 즉시 말씀을 드립니다. "부모님과 점심을 같이 못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신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해하시는 데 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급히 서둘러 부탁드리죠. "어머니한테 말씀드리세요." 아버지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시기 전에 저는 떠나려고 합니다. 아직은 아버지가 기분좋게 계시지만 아버지도 곧 슬퍼하실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러한 고통을 부모님께 안겨드린답니다. 그리고 단지 점심 식사 때문에 저랑 사귀고 있는 (이렇게 말하다니 참 나는 야비하지요?) 한 여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제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답니다. 

     그는 이러한 일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렸다. 

     "그러니까 지금은 부모님을 보고 싶지 않다는 거군요."

     "저희들은 너무나 잘 지냈는데" 라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게는 설명할 힘이 없었다. 

 

- 패배한 사랑,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 

 

***

     누군가에게 읽어보지 않은 책을 선물 받는 일은 굉장히 스릴 넘치는 일이다. 특히 작가도 소재도 장르도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더욱. 과거에 나는 내가 읽고 싶은, 혹은 드물지만 소장하고 싶은 책을 부탁해서 생일 선물로 받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았다. 이 환상문학의 대가라는 비오이의 '러시아 인형' 단편집을 선물 받은 것은 어언 2015년의 일로,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덜희'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부끄러워할지도 모르니까 가명을 사용한다) 라는 친구의 깜짝 선물이었다. 모름지기 선물이라는 것은 1) 선물한 사람의 취향, 2) 선물한 사람이 생각한 선물 받는 사람의 취향, 3) 그 둘 사이의 어딘가, 4) 완전 랜덤 - 따위를 반영하게 된다. 이 책은 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내 소중한 친구 덜희의 개인적 취향 -언젠가 그녀가 즐겁게 이 책을 읽었을 것이라는 것-과 그녀가 생각했을 때 나 역시 이 책을 제법 즐겁게 읽을 것이라는 바람 혹은 작은 확신 같은 것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미국집으로 오는 길에 소중히 들고 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일에 관련되지 않은, 더구나 잘 모르는 작가의 '문학' 작품을 시간을 내서 읽을 마음의 여유가 오랫동안 없었다. 최근에서야 나는 아침 저녁마다 잠깐씩 짬을 내서 일과 관련되지 않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꽤 즐거운 하루 일과가 되어버렸고 이제야 덜희의 선물을 진지하게 마주 볼 자신이 생긴 것이다.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속지에 적혀 있는 덜희의 귀여운 글씨가 '이제사 읽어볼 마음이 들었냐'고 어이없어 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참 반가웠다 (Figure 1). 

 

Figure1. 보통 '간판' 작품에서 벗어난 세계 문학 도서는 애초에 재고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새 것을 찾아도 어쩐지 낡아보이게 마련이라 새 책이 확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2015년의 나는 베리쥬스를 종종 갈아마셨나보다. 어쩌면 화장실을 잘 못 갔거나.

     '러시아 인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의 단편집. 마지막으로 소설이라는 것을 읽은 것은 참으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인지라 (나의 지인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거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약간 겁 비슷한 것까지 났다. 나에게 소설이라는 것은 당췌 어디로 데려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타임머신 혹은 환상 특급 열차의 트리거 같은 존재인데 "얘들고 화장실 가렴 케케케" 라니. 덜희 이 녀석은 도대체! 나는 한 번 더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에 장만한 캠핑용 의자를 방에 펼쳐서 진득이 앉았다 (캠핑사이트가 아니라 그냥 내 방이다). 그리고 몇 년의 머뭇거림이 무색하게 한참을 이 책을 붙들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호흡이 짧은 단편들이 담겨 있는데도 그 짧은 글에 숨막히는 긴장감과 가끔은 충공깽스러운 반전 요소들이 들어있어 더욱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ㅇㅅㅇ..!! 퐈..퐌타스틱. 덜희, 고마워요. 

'어구어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담과 이브  (0) 2019.08.24
마음새끼  (0) 2019.08.16
괜히 좋아하는 말말  (0) 2019.07.17
나만의 방  (0) 2019.05.07
섭섭하기는.  (0) 2019.05.06
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7. 26. 03:44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이란 행동이 아닌 습관인 것이다. " - 아리스토텔레스

- 탁월함이란.

 

"광기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며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행동이다. " - 아인슈타인

- 나는 미치지 않았는지.

 

"세상 누구에게도 당신의 문제를 절대 말하지 마라. 20%는 당신의 말에 신경쓰지도 않고 나머지 80%는 당신이 문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반긴다. " - 루 홀츠 

- 나의 아픔에 변태처럼 즐거워하지 말고 거울을 보기 바란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미래도 꿈꾸지 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라. " - 부처 

- 희망도 기대도 갖지 마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나의 가장 중요한 일들을 좌우해서는 안된다. " - 괴테

- 넷플릭스 그만 봐라.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 - 니체 

- 이 말은 좀 정도껏 들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진짜 죽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어구어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새끼  (0) 2019.08.16
환상 속의 덜희  (0) 2019.07.26
나만의 방  (0) 2019.05.07
섭섭하기는.  (0) 2019.05.06
음악을 듣는다는 것  (0) 2019.05.02
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7. 17. 02:32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앞서 밝혔듯이 나는 우리 해피 (*해피해킹 타입에스 키보드) 에게 끼얹을 키캡놀이 같은 걸 계획하고 있다. 울2햅삐 

 

키캡놀이 구상도 

일단 7월 말에야 배송을 시작한다는 배짱 좋은 곳에서 레진으로 주문 제작된 투톤 키캡 몇 개를 주문했고 (레알 이빨) 키보드 매니아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중국 사이트에서도 (어른의 사정) 추가로 키캡 여러 개와 오렌지 색 린다 케이블을 시험삼아 주문해보았다. 이 중국 사이트의 키캡은 레진 아니고 평범쓰라 당연한 건지 몰라도 앞서 주문한 사이트와 가격차가 엄청 났다. 무척 쌌다! 그래서 당연히 퀄에 대해서는 반신 반의하는 마음으로 큰 기대없이 주문했는데 그 분들이 의외로 주문 처리 속도도 빨랐고 해외 배송(중국->미국)도 신속히 해줘서 놀랐다. 일단 서비스는 진정한 대륙의 크라스를 반영하는 것 같아 안심했다. 제법이시군요? 후후 

 

그렇다면 키캡 상태는?

 

키캡, 린다 케이블 장착. 어머 뭐야 이거 좋아 

가격이 가격이라 굉장히 마감이 허접하거나 색이 제법 구린 플라스틱 키캡이 올 줄 알았는데, 색상도 생각했던 대로 잘 나왔고 마감 상태도 나쁘지 않은데다가 키보드 각 열에 맞춰 키캡 생김도 바르고 암튼 제대로 주문한대로 잘 보내주셨다 (function키, *키, 방향키를 표시하기 위해 일단 6개 주문). 일단 겉모습은 합격이고 키감은? 나는 기존 해피해킹 오리지날 키캡에 비해 키감에서 현저한 차이가 느껴진다면 얘네로 바꿔끼지 않고 그냥 쿨하게 버릴 생각이었으나 어머 이 키감 뭐죠? 전혀 차이를 모르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결론적으로 말해 좋은 구매였습니다 (급 존댓말). https://kbdfans.cn 의 기본 토프레 키캡, 색상도 키감도 마감도 가성비 쩌는 것 같습니다. 린다 케이블도 싸고 귀엽고 제대로 기능합니다 (그래야지). 해피해킹을 쓰시는데 비교적 싼 값에 키캡 놀이 하고 싶다 혹은 이걸 내가 직접 염색하기는 좀 빡세다 하시는 분들께 강력 추천드립니다. 사용한지 며칠된거라 내구성까지는 못 말하지만 암튼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 

 

레진으로 주문 제작하는 곳에서 이빨 (Shift, 백스페이스) 이 도착하면 다시 리뷰를 남기도록 하겠다 (급 반말). 

 

'두랄루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이 남긴 암호 풀이 - 1 & 2  (0) 2019.07.30
폴이 없다 !  (0) 2019.07.30
해피해킹 타입에스 HHKB TYPE-S 백무각  (0) 2019.05.03
음음 와인 두 잔  (0) 2019.04.20
어쩐지  (0) 2019.01.07
Posted in : 두랄루민 at 2019. 5. 16. 04:24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

내가 나의 소중한 연인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의 일로, 사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 일 년 전, 너무도 끔찍한 고통에 결국 3주 정도 격리 병동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삼엄한 병동의 귀찮은 절차도 마다 않고 찾아와준 소중한 사람들 중 한 명이 지금의 나의 연인이다. 보드 게임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내 문병에도 얼굴 맞추기 게임 같은 이상한 보드 게임을 들고 왔다. 그 때까지 연구 외에 둘만의 사적인 교류를 많이 해본 사이는 아니었어서 꽤나 어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함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 연구를 하면서 적어도 연구자로서의 호감과 존경심 같은 것은 당시의 서로에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함께 대화를 나누면 즐겁고 묘한 편안함이 있어서 (영어인데도 마치 모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 이전에도 그와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나는 면허도 없고 차도 없어 퇴원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퇴원하는 날도 그가 묵묵히 도와주었다. 그 날은 바깥 날씨도 좋았고, 더군다나 나는 정말 오랜만에 밖에 나온 것이라, 집으로 바로 가서 쉬지는 못할 망정!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점심도 같이 먹고 근처에 있는 줄도 몰랐던 작은 공원에도 들렀다. 초여름의 햇살과 풀 냄새를 킁킁 대며 아무 말 없이 둘이서 한참을 풀 밭 위에 누워있었다. 어 뜨듯하다 그리고 그 날부터 1일......?이 되었는데?? ? 어느덧 벌써 일 년이 다 되었다. 나는 보통의 꽁냥대는 연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나의 연인은 사랑이 뭐죠? 먹는 건가요 와구와구 공부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연애가 과연 순탄할 것인지 의심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언제나 손을 꼭 잡고 무언가에 신난 아기곰처럼 (산에서 들에서 때리고) 뒹굴고 (사막에서 정글에서 울다가) 웃다가 매일 종알종알 수다를 떨고 어떤 것은 함께 고민도 해가며 부산스럽게 잘 살아가고 있다. 사랑합니다! 아패로도 개속 

'투병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날이었다.  (2) 2019.05.10
사랑을 하세요  (0) 2019.04.02
요즘은 말이지  (2) 2018.05.09
2년 전  (0) 2017.03.07
오랜만에  (0) 2017.02.11
Posted in : 투병일지 at 2019. 5. 15. 02:00
Currently comments want to say something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