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 177

  1. 2019.05.12 Billie Holiday
  2. 2019.05.10 어느 날이었다. 2
  3. 2019.05.07 나만의 방
  4. 2019.05.06 섭섭하기는.
  5. 2019.05.03 해피해킹 타입에스 HHKB TYPE-S 백무각
  6. 2019.05.02 음악을 듣는다는 것
  7. 2019.05.01 낭만적 민감성
  8. 2019.04.30 구원의 확신
  9. 2019.04.20 음음 와인 두 잔
  10. 2019.04.04 인연 - 이선희

https://youtu.be/ZGAvnOSbJ_M

I've flown around the world in a plane

I've settled revolutions in Spain

The North Pole I have charted,

but I can't get started with you

 

Around the golf course I'm under par

And all the movies want me to star

I've got a house, a show place,

but I get no place with you

 

You're so supreme, lyrics I write of you 

Scheme, just for a sight of you

Dream, both day and night of you

And what good does it do?

 

In 1929 I sold short

In England I'm presented at court 

But you've got me downhearted, 

cause I can't get started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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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렛사판다 at 2019. 5. 1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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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힘이 들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더이상 남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이 길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아픈 것은 내가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해서가 아닐까? 이 일을 하기에 나는 너무도 멍청하고 게으른 것이 아닌가?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혹은 단순히 미래에 관한 것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저 눈 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바로 내일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조차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평소에 즐거워 하던 것들마저 할 수 있는 기력이 생기지 않았다. 대학 시절만해도 분 단위로 하루 하루 잠까지 줄여가며 살아왔던 나였는데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는 것 정도의 일이 힘에 붙이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해본 일이 없다. 나에게는 일어날리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완전히 고장나버렸다고 생각했다. 수리하려고 해도 부품이 없어서 고칠 수 없는 아주 낡고 작은 장난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나를 들고 갖고 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여러 학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 중엔 내 분야의 꼬꼬마 하룻강아지들도 알 법한 저명한 대가 교수님도 계셨다. 미국에서, 세계 속의 명문대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학교에서 자신의 연구실을 운영하며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강의를 하는 모습과 인터뷰가 담겨있는 다큐멘터리였다. 나는 그 영상으로 그 분의 실제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벌써 백발이 성성한 것이 내 생각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 분의 눈에 담긴 연구에 대한 진지한 열정, 설렘 같은 것은 이제 막 나와 활발하게 세상을 탐험해나가는 신생아의 호기심처럼 신선해보였다. 그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분은 여전히 내가 몸 담은 분야에서 왕성히 연구를 하는 학자로서, 마치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구루, 손에 닿을 수 없는 신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어린 시절과 지금 유일한 차이가 생겼다면, 지금의 나는 그 분을 매년 학회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나 따위가 감히.. 하는 생각으로 그 분께 진지한 대화를 요청해본 일은 없지만, 그 분의 파티에 가서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던 경험은 지금도 신기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 분이 직접 말아주신 바닷빛의 마르가리타도 생각난다. 당시 내가 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을 굉장히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독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함께 난다. 그렇다. 나는 비틀거리고 분명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지만, 어쨌든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이 작은 깨달음과 수많은 좋은 분들의 도움, 그리고 지지에 힘입어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매일 매일 무엇이든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었고 충분히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청소, 정리를 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일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자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무엇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예전처럼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의 하루 하루를 늘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힘들어했던,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에 고통스러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더이상 과거가 아니라 어찌됐든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득 이미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고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고 그저 죄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최근에 읽은 책 속 일화를 떠올려 본다. 어느 작가가 90세의 할머니에게 지금까지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 할머니는 60세 무렵에 바이올린을 다루고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당시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포기한 것이라고 답하셨다 한다. 그 때 시작했으면 30년은 연주할 수 있었을텐데 하고 그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통찰이 깊이 배어있다고 생각하는 박명수 님 어록 중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을 때다.' 라는 것이 있다. 정말 늦은 것 맞다. 하지만 뭐 어쩌란 말인가.

 

올해가 가기 전에 좋은 소식과 함께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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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투병일지 at 2019. 5. 1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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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만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내가 소설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학교 때 결혼해서 줄곧 일을 하며 생활에 쫓기다보니 글씨를 쓰는 일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빚을 내여 작은 가게를 하며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별다른 야심도 없었고 즐거움이라면 매일같이 음악을 듣고 짬짬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나와 아내와 고양이는 느긋하고 조용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써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문구점으로 가서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왔습니다(그때까지 만년필도 없었습니다). 밤늦게 일을 끝내고 혼자 주방 식탁에 앉아 소설(같은 것)을 썼습니다. 혼자 서툰 손놀림으로 나만의 '방'을 조금씩 만들어갔던 것입니다. 나는 그 때 위대한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고(쓸 가능성도 없었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글을 쓸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편하고 기분 좋은 장소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물론 그 방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안하고 유쾌한 장소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짧은 소설을 썼습니다. 그리고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따금 무척이나 신기합니다. 내가 어쩌다 소설가가 되었을까. 나는 언젠가는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저 막연히 흘러가다보니 우연히 소설가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소설가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던 것도 같고, 그런 건 딱히 없었는데 나중에 부지런히 만들어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솔직히 별문제가 아닙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도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멀리까지 여행하는 방 중.

 

***

글을 쓰는 것은 그저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편하고 기분 좋은 장소를 만들어 가는 행위라는 말이 내 맘에 걸렸다. 나 역시 나 자신을 구원하고 나중에는 타인의 마음또한 놓이게 하는 장소를 만들어 간다면 좋겠다. 물론 그런 야망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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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5. 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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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 꽃 진 자리

어린 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하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 

 

- 연두, 정희성

 

****

   자고 일어나 보니 선생님께서 이 시를 직접 옮겨 적으신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셨다. 너무 좋아서 써보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글씨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맞아 이런 흐늘 흐늘한 진달래 같은 필체를 갖고 계셨다.

   나는 대학 시절 학부 필수 과목, 전공 과목들과 함께 한 학기에 늘 적어도 한 과목 정도는 완전히 쌩뚱맞은 수업을 듣고는 했다. 주로 음악 감상, 독서 토론, 서양 미술사, 현대 미술의 이해, 프랑스 문학과 예술 등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지만 늘 나에게 미지와 동경의 세계였던 예술과 관련된 것들로 기억한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수강했던 것이 바로 '생활 원예' 수업이었는데, 삼성 에버랜드가 자연 농원이던 시절 이병철 회장의 부름을 받아 그곳을 튤립으로 물들이는 작업을 담당했던 노교수님의 수업이었다. 갑자기 기말고사를 아침 8시 공대 건물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야행성에다가 공대 건물에 갈 일이 많지 않았던 당시의 내게 무척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한 아침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나를 포함한 생활 원예 수강생들은 노교수님과 함께 양재 화훼 시장으로 답사를 나가기도 했고 우리 대학교 내 여기 저기에서 자라고 있었지만 독수리상의 독수리가 하늘을 날고 한글탑이 돌 때까지 술만 마시느라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던 (존재 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식물들을 사진으로 찍어 그 아이들의 '이름'을 알아내 레포트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줄도 몰랐던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흐늘흐늘 연약하게 피면서 주로 옅은 분홍빛을 띄고 먹을 수 있는 반면, 철쭉은 잎과 꽃이 무성하게 뾰족 뾰족나고 상대적으로 짙은 색을 띄고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개화 시기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역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 놈이 그 놈 같이 생겼기 때문에 수업에서 배운 구분법으로 교내의 진달래만을 정교하게 수집하여 반 건물 뒷 마당에서 선배들과 화전 부쳐먹은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내게 화전이라는 것은 소설에서나 본 미지의 요리였기 때문에 몹시 궁금했던 나는 반 사람들을 모아 '학교에 진달래도 피었으니 화전이라는 걸 다같이 만들어 먹어봅시다! 와이낫?' 하고 강력히 추진했었다. 정작 그렇게 만든 화전의 맛은 별 감흥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사실 마찬가지지만 대학 시절 나는 정말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시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그렇다면 어떻게 철쭉과 영산홍을 구별하는 가였다. 찾아보니 꽃의 크기와 수술의 개수, 잎이 지는지 등의 차이가 있는 모양이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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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5. 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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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연구실에 키보드를 들고 왔다. 어찌됐든지 간에 멤브레인 키보드보다는 시끄러울 것 같아서 좀 조심스러웠는데, 에어컨 소리가 하도 커서인지 전혀 거슬리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나를 엄청 사랑해주는 데다가 엄청 둔한 랩메이트와 한 방을 써서 마음이 놓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두절미하고 해피해킹 타입에스를 며칠 사용해본 결과, 평생 키보드로써 굉장히 좋은 소비였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군더더기 없는 물건이다. 

  사람들이 손사래치는 해피해킹의 괴랄한 키배열은 그닥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 <-요거. 물결 버튼이 말도 안되는 곳에 붙어있다는 거랑 방향키 등은 소올직히 아직 좀 불편한 듯 하다. 익숙한 단축키를 별 생각없이 쓰다가는 강제 종료를 해버리는 수가 있다. 엄마한테 카톡 보낼 때 엄마 말투 따라하려고 ~~~~~~~~~~~~ 물결을 많이 쓰는데 그 때마다 위치를 헷갈려서 창을 종료... 그냥 엄마에게도 보통 나의 말투로 카톡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은근히 * 를 많이 사용하는데 무각이다보니까 요게 위치가 약간 헷갈린다. 가만보자 12345678 아 여기구나! 또 이 키보드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는데 내가 백스페이스를 참 많이 쓰는 편이더라. 처음에는 이게 어딨는 건가 좀 당황했는데 키보드 앞 쪽 딥스위치 설정으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모든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나도 키캡놀이를 해볼 예정이다.. (예? 안돼애ㅐ애애 이렇게 거지가 됩니다) 아니 무슨 키캡 하나가 이빨 가격이야 기계식 키보드 한 대 살 수 있어 레알 

  나는 맥유저로 딥스위치는 2, 3, 6번을 켜놓고 사용 중이다. 이렇게 설정해놓으면 키보드가 맥 모드로 바뀌어 커맨드, 옵션 키를 별 다른 추가 설정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또 오른 쪽 상단의 삭제키를 백스페이스로 바꿀 수 있고 자판을 치면 자고 있던 컴퓨터가 일어난다 (일어나세요 용사여) 어떤 맥유저들은 자판을 눌러도 컴퓨터가 안 깨어난다고도 하는데 내 경우엔 잘 되는 것 같다. 단 체감상 반응 속도는 느린 편이다. 컴퓨터가 부시시 헤롱헤롱 깨어나는 기분이다. 사용하는 OS가 최신이라 '이 잘났지만 세상에 태어난지는 꽤 된 키보드'의 사용이 어떨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나 회사 홈페이지에 가보면 가장 최신 맥OS까지 테스트를 끝내고 드라이버도 업데이트해서 지원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 혹자는 딥스위치 설정이 안 먹는다! 망했다!하는데 그럴 때는 키보드를 컴퓨터에서 부드럽게 분리했다가 스윗하게 재연결하면 딥스위치 변경이 비로소 적용됩니다. (설명충) 

  키보드에 대해서는 주문한 이빨이 도착하면 사진을 올려보는 걸로 한다.

  

   

해피해킹 타입에스 맥 모드, function키 사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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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두랄루민 at 2019. 5. 3.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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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하나를 얻은 것 같은 흐뭇함에 젖어들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젊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학도 있지만요.

   나에게 음악이 가진 최대의 훌륭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차이도 알고 중간 정도 차이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미묘한 작은 차이도 식별할 수 있죠. 물론 그것은 나한테 좋은 것, 나한테 나쁜 것이라는 뜻이니 그저 개인적인 기준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차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인생의 질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 크게 달라지게 만드니까요.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좋은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 중 - 무라카미 하루키 

*****

   나에게 하루키는 소설보다는 수필이 좋은 작가이다. 그의 경험과 생각이 여과없이 녹아 있고 짧고 쉽게 쓰여져 있어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다. 올해엔 내가 가지고 있는 종이책들을 미련이 남지 않도록 다 읽고 방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그의 잡문집을 다시 읽고 있다. 아무 페이지나 잡히는 대로 한 꼭지씩 읽어도 재밌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오늘은 이 사람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음악에 관련된 글을 읽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음악입니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또한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하는 편인데,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벽 4시에 기상해서 6시간 글을 쓰고 (혹자에 의하면 400자 원고지 10장 분량까지 반드시 쓰고 멈춘다고 한다) 밖에 나가 달리고 수영을 하고 샐러드를 즐기고 독서, 음악감상을 하고 9시엔 취침하는 일과를 가지고 있다. 올빼미에 잠도 잘 안 자고 꽤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낸 나에게 이런 스토익하고 규칙적인 삶이란 차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나도 그와 비슷한 하루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하고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고 논문을 쓰고 자기 전에 짧은 동영상을 한 편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게 지루해보일지 모르지만 이 과정에서 꽤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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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5. 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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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부자는 언제나 이상할 정도로 말없이도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그보다 훨씬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 판단을 유보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때문에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자주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적잖이 시달려야 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에게 그런 특성이 나타나면 재빨리 알아차리고 달라붙게 마련이다. 내가 알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난폭한 녀석들의 은밀한 슬픔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학에 다닐 때 억울하게도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대부분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들이 은밀한 고백을 털어놓을 기미가 확실하다 싶으면, 나는 종종 잠을 자는 척하거나 뭔가에 몰두해 있는 척하거나 아니면 악의를 품은 듯이 일부러 경망스럽게 굴었다. 젊은이들의 은밀한 고백, 아니면 적어도 그런 고백을 하면서 사용하는 표현이란 흔히 남의 말을 표절한 경우가 많고, 그것을 억지로 숨기려고 하다보니 대개 흠이 나 있게 마련이다. 판단을 유보하면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 우리 아버지가 점잔을 빼며 말씀하셨고 지금 내가 점잔 빼며 다시 이야기하듯이 기본적인 예절 감각이란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다르게 분배되는 것이며, 그 사실을 깜박 잊어버릴 때면 뭔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내가 관대한 것처럼 자랑했지만 나는 이런 관대함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이란 단단한 바위 덩어리나 축축한 습지에 근거를 둘 수도 있지만, 나는 일정한 단계가 지난 뒤에는 그 행위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세계가 제복을 차려입고 있기를, 말하자면 영원히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기를 바랐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특권을 지닌 시선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오만하게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해 준 개츠비만이 내가 이러한 식으로 반응하지 않은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 내가 드러내 놓고 경멸해 마지않는 것을 모두 대변하는 개츠비 말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일련의 성공적인 몸짓이라면 그에게는 뭔가 멋진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치 1만 5000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하는 복잡한 지진계와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삶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 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그럼 진부한 감수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한테서도 일찍이 발견한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그래,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속절없는 슬픔과 숨 가쁜 환희에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삼은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 

 

- 위대한 개츠비 중, 스콧 피츠제럴드

 

    *주말 동안 기다려온 해피해킹 타입에스가 방금 도착했고, 나는 계획했던 대로 위대한 개츠비의 첫 부분을 이 키보드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 평생을 함께 할 동지를 얻은 느낌이라 무척 설렌다. 백무각이라 너무도 말끔하여 나의 손 끝 기억력을 자극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단 맥과의 호환성이 좋다는 것에 이견은 없고 오래 사용하기에 기분 좋은 입력 장치를 만난 것 같아 좋다.  

   위대한 개츠비 작품에 대한 할 말이 사실 많지만 일단 키보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다. 아주 어렸을 때, 컴퓨터 신동인 오빠가 부러워 엄마를 졸라 컴퓨터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엔 무려 도스 운영 체제였고 너무도 당연한 듯 씨알티 모니터와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했다. 나는 한글과 영문 자판을 외워 타자 연습을 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날마다 유독 탐내는 컴퓨터 자리가 있었다. 당시엔 획기적이었던 윈도우 운영체제를 가진 최신 컴퓨터가 아니었는데도 도각 도각하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퍽 마음에 드는 자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이 키보드를 사용해보니 나도 모르게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시절 컴퓨터 학원이 끝나면 나를 집 앞까지 졸졸 따라오며 줄기차게 괴롭혔던 쪼그만 남매의 얼굴도 떠오른다. 당시 나는 성숙한 초딩이(라고 믿고있)었고 그들은 고작해야 유딩 정도 되는 아기들이었는데 아직도 왜 아는 사이 조차 아니었던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는지 알 수 없다. 정말 소심한 울보였던 나는 그들에게 '쫓아오지 마' 이상의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고 결국 그 매일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가던 길을 멈추고 애원하듯 외쳤다! 당시 내가 뭐라고 외쳤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순간 그 남매가 무척 놀란 듯한, 미안한 듯한 뭔가 복잡한 슬픈 표정을 지었었고, 나를 따라오던 것을 멈추고 발길을 돌렸다는 것과 그 뒤로는 학원에도 나오지 않고 나를 뒤쫓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잊고 있던 이야기를 떠올렸고 주절거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이 훌륭한 새 키보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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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5. 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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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피츠제럴드가 훌륭한 작가라는 사실은 제아무리 현실에 가혹하게 시달려도 글에 대한 신뢰를 거의 잃지 않았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은 글을 씀으로써 구제되리라 굳게 믿었다. 아내의 발광도, 세간의 냉랭한 묵살도, 서서히 육체를 좀먹어가는 알코올도,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빚도 그 뜨거운 믿음을 앗아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글을 통한 구원을 믿지 못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옛 기숙사 친구 헤밍웨이의 운명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죽음 직전까지 매달리듯 계속해서 소설을 썼다. '이 소설만 완성하면......' 하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모든 것이 회복된다.'

   새로 탄생할 작품이야말로, 그것을 만들어내고자 고투하는 자신의 영혼이야말로, 그를 이끌어주는 먼 등대의 불빛이었다.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인 불행한 제이 개츠비가 후미진 맞은편 물가에서 점멸하는 등대 불빛을 유일한 버팀목 삼아 오탁으로 가득한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듯이.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독자가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멸망의 미학'이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구원의 확신'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 스콧 피츠제럴드, 재즈 시대의 기수 중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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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어구어구 at 2019. 4. 3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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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는데, 오늘 기분 전환 겸 혼자 나와 레드 와인 두 잔을 마셔버렸다. 하하 

어 취한다 거 어어.. 호롤로로롤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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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두랄루민 at 2019. 4. 2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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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 날 

모든 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게요

 

취한 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맺지 못한데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 건 없으니까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테죠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 생에 못한 사랑 

이 생에 못한 인연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몇 천 번 들어도 좋아하는 노래. 전통 악기, 특히 현악기의 음색은 정말 좋은 것 같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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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렛사판다 at 2019. 4. 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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